‘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더이상 의료 산업화의 수단으로만 삼지 말고, 환자의 안전이 담보된 진료의 보조수단임을 명확하게 깨닫도록 하라’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에서 비대면 진료 환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반영하여 동일 질병으로 30일 이내 내원한 적이 있는 환자만을 재진 환자로 설정하여 시범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4개월만의 일이다.
지난 4개월간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 환자 비율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보도와 비대면 진료로 처방을 받은 처방 약품의 80% 이상이 사후피임약이나 탈모치료제였다는 일부 유관 단체의 통계 발표 외에는 정부 차원에서 시범 사업의 현황이나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나 연구 결과 발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리고 정부의 이번 조치는 심지어 시범 사업 결과에 대해서 의료계와의 토론이나 공청회 한 번 없이 그야말로 전격적인 추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있다.
최근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플랫폼 업체들의 고사 위기와 의료 산업 활성화를 다루고 있는 기사들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번 정부의 시도는 산업계의 주장대로 비대면 진료의 범위를 대폭 확대함으로서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하여 산업계의 경제적인 효과를 키우려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자 배경임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료계가 누차 주장했듯이 비대면 진료의 목적은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해서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본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산업계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비대면 진료라는 단어에서의 핵심은 바로 비대면이 아닌 진료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에 있어서 비대면이라는 수단이 이용되는 것이 바로 비대면 진료의 핵심적인 정의인 것이다.
의료가 일반적인 산업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결과의 책임에 대한 무게감에 있다. 의료에 있어서 사소한 잘못된 과정 하나가 환자에게 사망 혹은 장애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철저한 관리 감독을 통해 의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그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진료의 내용이나 범위에서조차 국가의 통제가 개입되는 특수한 영역이다. 이렇게 특수한 의료라는 영역에서 의사는 국가로부터 배타적인 권리인 진료권을 부여받지만 이 진료권은 권리보다는 환자의 결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는 의무에 가깝다.
이러한 의료의 특수성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공통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개념으로써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는 국가들 대부분이 의료계와의 충분한 의사 소통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고 있고 개별 국가들의 의료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를 활용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 접근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사회적인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코로나 판데믹과 같은 국가적인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코로나가 종식된 지금은 당연히 비대면 진료에 대한 필요성이 극히 낮아진 상태이며, 이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규제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나 현실을 감안할 때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거동이 매우 불편하거나 병원과의 물리적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일부 비대면 진료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에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비대면 진료의 대상 범위를 설정하고 시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비대면 진료의 시범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 조치 없이 서둘러 그 진료의 대상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정부가 의료의 특수성은 무시한 채 비대면 진료를 오직 부를 창출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만 인식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에 미래의료포럼(대표 주수호)은 다음과 같이 정부에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신산업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천박한 발상을 버려라.
하나, 정부는 당장 비대면 진료 대상 확대시도를 중단하라.
하나, 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시범 사업에 대해 의료계와 함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진행하라.
하나, 정부는 비대면 진료의 이해 당사자인 동시에 가장 큰 주체인 의료계의 의견을 존중하여 우리나라의 의료 상황에 맞는 비대면 진료 체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라.
2023년 11월 7일
미래의료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