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의료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 행태를 규탄한다.
최근 잇달아 일어나는 법원의 판결로 인해 의료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대목동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의료진들이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사법부의 피해자에 대한 막연한 온정주의와 의료 전문가인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 행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의학적인 판단과 환자의 요구에 의해서 장폐색 환자의 수술을 늦춘 사건에서 수술을 늦춘 결정을 한 외과의사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하여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환자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수술보다는 보전적 치료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의사로서 최적의 치료법을 결정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판결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 의료계는 의학적 판단이라는 전문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진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으나 이후 상고심에서 올바른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8월 31일 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외과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하여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미래의료포럼(이하 본 회)은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교과서적으로 장폐색 환자라고 해서 모두에게 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상당수의 환자는 수술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에 수술 시행 여부는 철저히 해당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즉, 장폐색 시 수술 여부 및 시점은 의학적 판단의 영역이며, 그 판단이 일반적인 의학적 판단에서 크게 벗어난 판단이 아니었다면 판사를 포함한 그 누구도 당시 환자를 진료했던 담당 의사의 판단을 무시하는 행태를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명확하게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환자가 수술을 원하지 않는 경우, 그 환자의 결정권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재판부는 인정해야 한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환자를 살리는데 필수적인 전문 과목 그 중에서도 특히 외과계에 젊은 의사 및 의대생들의 지원이 급감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의료진에 대한 마녀사냥 식의 처벌이 일어나면서부터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필수과목 분야에 대한 지원 기피 현상은 최근 의료진에 대해 과도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판결의 경향이 심해짐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어 필수의료의 몰락을 촉진할 것으로 우려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의 발생되는 문제는 대부분 해당 의사와 환자 개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법원이 내린 판결은 그 영향이 전 국민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의 특수성을 망각하고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이러한 판결로 인해 전 국민의 건강과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안정성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법원은 깊이 고려해야 한다.
본 회는 의사의 의료 행위가 무과실 또는 경과실로 판단될 경우, 비록 의료 행위로 인해 환자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거나 환자가 사망한다 하더라도 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면제하고 민사적 책임을 경감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미국과 유럽 사법부의 판결 흐름이 옳다고 믿고 있다. 민주주의와 현대의학의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에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고,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지는 이유는 바로 의학의 특수성을 인정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이런 방향이 국민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외국의 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 감정을 대한민국이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전제가 없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환자를 살려내려 위험을 무릅쓰는 의사는 점점 사라지고,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 방어적인 진료만 하는 의사만 존재할 것이다.
본 회는 법원에 의료행위 시 의료 현장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고려하고, 의사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판결을 내려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국회에 환자의 치료 결과와 상관없이 의사에게 과실이 없거나 매우 경한 과실만이 있을 경우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야만 대한민국의 의료가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 사법부와 입법부의 이러한 전향적인 움직임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없다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의료의 암울한 미래는 결국 국민들의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3년 9월 6일 미래의료포럼